진주 남강변 바위 벼랑 위에 장엄하게 자리 잡은 촉석루는 주변의 풍경과 조화롭게 어우러진 크고 아름다운 누각으로, 예로부터 경복궁의 경회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조선의 3대 명루'로 꼽혔다. 1365년(공민왕 14) 김중선 등이 진주성 수축시 신축하였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총지휘는 물론 남쪽 지휘대로 사용하면서 남장대(南將臺)로도 불렸으며, 임진왜란 때 의기 논개가 낙화, 순국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60년에 재건한 것이다.1593년 7월 임진왜란 당시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승리한 왜군이 촉석루에서 승전연을 벌일 때 진주 관기 논개가 만취한 왜장 가야무라 로쿠스케의 허리를 열 손가락에 낀 반지로 빠지지 않게 꽉 껴안은 후 촉석루 아래 의암에서 남강으로 투신했다.다산 정약용과도 인연이 깊은데, 1780년, 1790년 두 차례 진주를 방문한 다산이 촉석루에 올라 진주의 경관과 진주인의 충절을 칭송하는 촉석루회고, 배외구홍절도범유, 무검편증미인, 중유촉석루기 등의 진심이 담긴 여러 편의 시를 남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