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문신이며 조선 3대 시가인(詩歌人)의 한 사람인 고산 윤선도의 본관인 해남 윤 씨 가문의 고택이다. 고산 윤선도는 1587년 지금의 서울 동숭동에서 태어나 해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1612년 문과에 응시해 장원으로 급제, 1628년 41세 때에는 '왕자사부'가 되어 봉림대군을 3년 동안 가르쳤다. 봉림대군이 조선 제17대 효종으로 즉위하면서 스승인 윤선도에게 수원에 집을 지어 하사했고 1660년 효종 사망 후 82세가 되던 1668년(현종 9) 수원의 집을 뜯어 배로 해남까지 운반해 선조들이 대대로 살던 연동마을에 옮겼는데, 이 건물이 녹우당이다.집 뒤 산자락의 비자나무숲이 바람에 흔들릴 때 들리는 소리가 마치 푸른 비가 내리는 소리 같다고 해서 녹우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637년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나라 태종에 굴복하자 보길도에 은거하며 13년 머물렀고 85세의 나이로 보길도 부용동 낙서재에서 생을 마감했다.윤선도의 4대 조부이자 연동마을 입향조인 어초은 윤효정(1476~1543)이 아들의 진사 시험 합격을 기념해 심었다고 전해지는 녹우당 앞 은행나무, 1400년 경 '뒷산의 바위가 드러나면 마을이 가난해진다'는 선대의 유훈을 받들어 후손들이 나무를 심어 바위를 가렸다는 500년 넘은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241호)이 볼거리다. 해남 윤 씨 가문은 500여년 전 입향하여 본관을 얻은 어초은 윤효정으로부터 시작해 5대 윤선도(1587-1671), 8대 윤두서(1688-1715) 등 조선시대 인물들을 배출한 명문가로 알려져 있다.